최첨단을 달리며 아날로그를 꿈꾸는 인간: 우리는 왜 늘 과거로 도망치는가?

수천 년을 이어온 “옛날이 좋았지”라는 기묘한 탄식

점토판에 새겨진 고대 수메르인의 기록이나 로마 시대 원형 경기장 구석의 낙서에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 그리고 “옛날이 훨씬 살기 좋았다”는 한탄입니다.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똑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손가락 하나로 지구 반대편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묻는 말에 척척 대답을 내놓는 눈부신 최첨단의 풍요 속에서도 우리는 습관처럼 아날로그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인간은 왜 몸은 그토록 미래를 향해 전력 질주하면서, 마음은 늘 과거를 향해 뒷걸음질 치려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단순히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보수적인 향수병이 아닙니다. 비록 전문적인 학자는 아닐지라도, 세상을 관찰하고 사유할수록 이 기묘한 모순이야말로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본질을 꿰뚫는 열쇠라는 확신이 듭니다. 인류가 끊임없이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이 이중적인 태도 속에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인간의 진짜 얼굴과 처절한 생존 방식이 숨어 있습니다.

1. 문명을 밀어 올린 두 개의 바퀴: 숭고함과 이기심

우리가 이룩한 거대한 문명의 발전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아주 상반된 두 가지의 동력이 뒤엉켜 있습니다. 하나는 질병과 굶주림, 불편함으로부터 인류 전체를 구원하겠다는 숭고한 ‘인본주의적 열망‘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과학자와 사상가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타적인 목표로 기술의 진보를 이끌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또 다른 강력한 동력은 바로 ‘이기심‘입니다. 남들보다 내가 조금 더 편안해지고 싶고, 타인보다 우위에 서서 나만의 특권을 누리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욕망 말입니다.
만약 새로운 기술이나 발명품이 등장했을 때 나 혼자만 그것을 독점할 수 있다면, 인간은 그 상대적인 우월감 속에서 엄청난 행복과 만족을 느낄 것입니다. 남들은 걸어 다닐 때 나 혼자 자동차를 타고, 남들은 부채질을 할 때 나 혼자 에어컨 바람을 쐬는 상상은 문명을 앞당기는 강력한 채찍질이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타적 이상과 이기적 욕망이라는 두 바퀴를 굴리며 인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더 빠르고 편리한 미래를 향해 질주해 왔습니다.

2. 속도의 배신과 상대적 전멸감: 기술에 압도당한 정신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낸 그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인간의 정신이 감당하고 적응할 수 있는 한계치를 아득히 넘어서 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나 혼자 편해지려 했던, 혹은 인류 전체를 이롭게 하려 했던 그 눈부신 기술들은 결국 보편화되어 모두의 ‘기본값’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쥐고 모두가 쾌적한 실내를 누리게 되는 순간, 기술이 주던 ‘상대적 우위’의 쾌감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남은 것은 오직 누구의 기술이 더 최신인지, 누가 더 빠른 트렌드를 쫓아가는지를 겨루는 피 말리는 무한 경쟁뿐입니다.
고도화된 기술의 쳇바퀴 위에서 우리는 멈추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쏟아지는 정보와 알고리즘의 파도 속에서 인간은 주체성을 잃고 거대한 시스템의 톱니바퀴로 전락하는 듯한 위기감을 겪습니다. 내가 쫓아가지 못하면 순식간에 도태될 것이라는 공포, 타인의 완벽해 보이는 SNS 속 일상과 나의 현실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느끼는 초라함. 저는 이것을 ‘상대적 전멸감’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완벽해진 문명 속에서 정작 나의 고유한 존재 가치는 점점 희미해지고 소외되는 이 처절한 감각이야말로 현대인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입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쏘아 올린 기술의 속도에 역으로 짓눌려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입니다.

3. 과거라는 이름의 방공호: 우리가 아날로그로 회귀하는 이유

이러한 한계 상황에 부딪힐 때, 인간이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생존 방식이 바로 ‘과거로의 회귀’입니다. “옛날이 좋았지”라는 탄식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자의 고리타분한 불평이 아닙니다. 그것은 폭주하는 기술의 굉음 속에서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의 심리가 작동시키는 눈물겨운 자정 작용이자, 일종의 정신적 도피처입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아날로그의 과거는 단순히 에어컨이나 스마트폰이 없던 불편한 시대가 아닙니다. 그곳은 남들과 끊임없이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었던 안전한 시공간입니다. 정보가 느리게 흐르던 시절, 다 같이 불편하고 다 같이 가난했지만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웃을 수 있었던 평등한 기억의 공간입니다. 비록 그것이 뇌의 이기적인 필터링을 거쳐 육체적 고통은 탈색되고 낭만만 남은 ‘편집된 기억’일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차갑고 매끄러운 디지털 세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인간 본연의 뭉툭한 감각을 되찾을 마음의 방공호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학문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저는 확신합니다. 인류가 앞으로 어떤 경이로운 미래를 창조해 낸다 하더라도, 우리의 영혼은 끊임없이 낡고 투박했던 옛날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것이 모순 덩어리인 인간이 이 눈부시고 가혹한 문명 속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유일하고도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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