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주도권을 되찾다. 5편] 거대한 자본의 사육장을 탈출하는 가장 우아하고 위대한 반란

자본의 식단표를 찢고, 우리 집 식탁의 헌법을 다시 쓰다

우리는 지금까지 4편의 글을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리함’이라는 환상의 이면을 낱낱이 파헤쳐 보았습니다. 터치 한 번에 문 앞으로 배달되는 자극적인 초가공식품들은 우리의 미각을 교란하는 치밀한 덫이었고, 그 덫에 걸려 망가진 몸은 다시 제약 산업의 영원한 구독 모델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 거대한 자본의 사육장 속에서 우리 어른들이 무기력하게 통제권을 넘겨준 대가는, 내 아이가 학교 교실에서 홀로 감당해야 할 잔인한 놀림과 차가운 눈물이라는 참담한 비극으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기에는 이릅니다. 맹물과 차가운 우유 한 잔으로 미각의 영점을 굳건히 지켜냈던 제 부모님의 담담한 유산이 증명하듯, 그리고 바벨을 들어 올리며 땀 흘리는 청년들의 거친 숨소리가 웅변하듯, 우리에게는 이 교묘한 시스템을 거부하고 신체적 자율성을 되찾을 충분한 힘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막연한 비판과 한탄을 넘어, 내 집 부엌에서부터 시작되는 가장 일상적이고도 위대한 반란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입니다.

1. 부엌의 불을 켜고 칼을 쥐는 행위, 그 숭고한 저항의 의미

현대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요리하는 시간은 아깝고 고된 노동이니, 그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공장에서 찍어낸 밀키트와 배달 음식이 교묘하게 파고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요리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가사 노동 하나를 덜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몸을 구성하는 피와 살이 될 물질에 대한 ‘결정권’을 얼굴도 모르는 거대 기업의 알고리즘에 통째로 헌납하는 꼴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내 손으로 식재료를 다듬고 부엌의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는 행위는 단순한 생존의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이 짜놓은 폭력적인 식단표를 찢어버리고, 내 몸의 주도권은 온전히 나에게 있음을 선언하는 가장 주체적이고 숭고한 저항입니다. 투박하게 썰어낸 채소 한 줌, 심심하게 끓여낸 찌개 한 그릇에는 기업의 이윤 추구 논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칼을 쥐고 도마 앞에 서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하는 자만이, 자신의 몸과 가족의 건강을 외부의 통제로부터 완벽하게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2. ‘진정한 편리함’의 개념을 통째로 재구성하라

우리는 흔히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알약 하나로 증상을 억누르는 것을 두고 ‘편리하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멀리 내다보면 이보다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삶도 없습니다. 당장의 수고로움을 회피한 대가로 우리는 만성 피로를 달고 살며, 주기적으로 병원 문턱을 넘나들어야 하고, 평생 낫지 않는 대사 질환과 싸우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의료 산업에 탕진해야 합니다. 건강을 잃고 약봉지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노년의 삶을, 과연 어느 누가 ‘편리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편리함이란 결코 스마트폰 앱의 터치 횟수에 있지 않습니다. 내 몸이 어떤 음식을 섭취했을 때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는지 정확히 인지하는 감각,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느껴지는 개운한 활력, 타인의 시선이나 거울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언제든 내가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가벼운 신체. 바로 이것이 진정한 자유이자 가장 고차원적인 의미의 편리함입니다. 눈앞의 가짜 편리함에 속아 남은 반평생의 진짜 자유를 저당 잡히는 어리석은 거래를 이제는 단호히 멈춰야 합니다.

3.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식탁 위 주도권 탈환의 첫걸음

식탁의 주도권을 되찾는다는 것이 갑자기 모든 식재료를 유기농으로 바꾸고, 매끼 한정식집 수준의 화려한 요리를 차려내야 한다는 강박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혁명은 늘 가장 사소하고 구체적인 지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당장 내일 아침,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습관적으로 집어 들던 액상과당 주스를 과감히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에 깨끗한 맹물과 차가운 우유를 채워 넣는 것, 오직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첫걸음이 됩니다.

배달 앱을 지워버리는 것이 두렵다면, 일주일에 단 두 번만이라도 배달 대신 집 앞 마트에서 제철 식재료를 사 와서 가장 단순한 형태로 조리해 보십시오. 복잡한 양념이나 화려한 기교는 필요 없습니다. 자연이 품고 있는 본연의 맛, 다소 밋밋하고 심심할지라도 먹고 난 뒤에 입안에 불쾌한 끈적임이 남지 않는 그 정갈한 미각의 경험을 나와 내 아이의 뇌에 서서히 다시 새겨 넣는 과정이 중요할 뿐입니다. 미각의 영점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하면, 우리 몸은 스스로 자극적인 독소를 밀어내며 경이로운 자정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4. 흔들리지 않는 미각의 방파제, 우리가 남겨야 할 단 하나의 유산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결코 막대한 통장 잔고나 훌륭한 학벌만이 아닙니다. 자본주의라는 거친 파도가 끊임없이 달콤하고 자극적인 쾌락으로 아이들의 삶을 탐할 때, 그 유혹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닻을 단단히 내릴 수 있는 ‘건강한 미각의 기준점’이야말로 부모가 남겨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영속적인 유산입니다.

살갑지 않았던 제 부모님이 무심한 듯 건네셨던 차가운 우유 한 잔이 제 삶을 지켜내는 견고한 요새가 되었듯, 오늘 저녁 우리가 식탁 위에 차려내는 소박하지만 정직한 밥상 역시 훗날 아이가 거친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것입니다. 식탁의 주도권을 되찾는 일, 그것은 자본에 종속된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내 삶의 온전한 지배자로 거듭나는 실존적인 투쟁이자, 내 아이의 웃음과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 부모가 마땅히 치러야 할 거룩한 의식입니다. 자, 이제 당신의 부엌으로 돌아가 묵묵히 불을 켜고 식탁의 주도권을 쟁취하십시오. 이 우아하고 위대한 반란에 동참할 당신의 용기를 뜨겁게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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