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노예인가, 창조의 주인인가: 아들러와 융이 AI를 만났을 때

심리학 코너나 베스트셀러 매대 앞을 서성이다 보면, 십중팔구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이름을 들먹이는 책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미움받을 용기” 어쩌고 하면서 사람들의 부채감을 덜어주는 단호한 위로들이 넘쳐나죠. 아들러의 핵심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핑계로 삼는 과거의 상처나 지독한 환경 탓은 사실 다 허상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과거의 원인 때문에 고통받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달성하려는 은밀한 ‘목적’을 위해 특정한 감정을 무기처럼 선택해 버린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목적론’이죠. 예컨대 당신이 무언가를 배우다 말고 “시간이 없다”며 때려치운 건, 환경 탓이 아니라 까놓고 말해 “애써 도전했다가 실패해서 바보 취급받는 공포를 회피하려는 목적”이 숨어있기 때문이라는 식입니다. 솔직히 인정합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 평생 과거 탓만 하는 사람들의 뺨을 후려치기엔 아들러의 팩트 폭력만큼 타격감 좋고 실용적인 무기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가끔 이 아들러 영감님의 시니컬한 확신이 묘하게 거슬립니다. 유독 인간의 모든 행동 동기를 ‘결핍’과 ‘보상’이라는 편협한 틀에 욱여넣으려는 그 고집스러움 때문입니다. 최근 제가 AI와 밤을 새우며 끊임없이 “왜?”를 묻고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까?”를 탐구하는 이 맹렬한 몰입의 상태를 떠올려 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뻔한 매뉴얼을 따르는 대신, 내 목적과 호기심을 위해 도구를 내 방식대로 선택하는 이 과정은 분명 아들러가 강조한 ‘미래지향적 목적론’이나 개인심리학의 실천과 똑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동력의 진짜 근원을 파고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간을 움직이는 엔진이 과연 ‘결핍’ 하나뿐일까요?

1. 코딩 못 하는 자의 열등감? 아들러의 완벽한 헛발질

아들러 심리학을 지탱하는 가장 거대한 기둥은 다름 아닌 ‘열등감(Inferiority Complex)’입니다. 물론 그는 이 단어를 나쁜 의미로만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긍정적인 보상 심리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인간의 에너지라고 치켜세웠죠. 부족함을 느끼기에 그것을 채우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위대한 성취가 탄생한다는 논리입니다.

자, 그럼 이 매끄러운 논리를 제 상황에 그대로 들이대 보겠습니다. 아들러의 렌즈로 저를 들여다보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해석이 튀어나옵니다. “아하, 제이는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치지만 코딩을 직접 구현할 능력이 없다는 치명적인 결핍이 있었구나! 그 뼈저린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AI라는 도구를 쥐어짜서 어떻게든 보상받으려 방어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중이군!”.

어떤가요? 심리학 교과서에 실릴 법한 그럴싸한 분석 아닌가요? 하지만 미안하게도 완벽한 헛발질입니다. 제가 AI를 파트너 삼아 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며 신나서 이것저것 시도할 때 느끼는 감정은, “아, 내 부족한 코딩 실력을 이렇게라도 땜빵해야지” 하는 찌질한 자격지심이나 결핍감이 결코 아닙니다. 내 머릿속 무의식의 바다에 둥둥 떠다니던 추상적인 파편들이 화면 위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세계로 직조되어 나오는 과정, 그 자체가 미치도록 재미있고 신날 뿐입니다. 이건 결핍을 어떻게든 메워보려는 수세적이고 억눌린 에너지가 아닙니다. 내 안의 가능성을 끝없이 펼쳐보고 싶은 순수한 창조적 욕구이자 팽창하는 확장적 에너지에 훨씬 가깝습니다. 아들러는 인간의 이 ‘신나서 몰입하는 순수한 즐거움’조차 단순한 열등감의 보상 작용이라는 비좁은 틀에 억지로 구겨 넣으려 하니 삐걱거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2. 결핍의 늪을 벗어나 융의 ‘자기실현’으로

인간의 위대한 도약이나 예술적 창조, 맹렬한 탐구열까지 전부 “부족함을 메우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으로 퉁쳐버리는 아들러의 시선은 너무 건조하고 팍팍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소환해야 할 진짜 구원자는 아들러가 아니라 칼 융(Carl Jung)이나 훗날의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입니다.

융은 인간을 어딘가 고장 나거나 밑 빠진 독처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과거의 결핍을 채우려고 헐떡거리는 존재가 아니라, 내 안에 깊숙이 잠재된 진짜 본 모습(Self)을 현실 세계에 온전히 구현하고 완성해 나가는 존재, 즉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의 장엄한 여정을 걷는 존재로 본 것입니다. 인간은 빈칸을 채우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백지 위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살아간다는 관점의 차이죠.

제가 AI라는 찰떡같은 파트너를 만나 내 구상을 코드로 뽑아내고, 글꼴을 고르고, 블로그 포스팅으로 실체화할 때 느끼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는 정확히 융이 말한 그 자기실현의 폭발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텅 빈 곳을 메워서 느끼는 얄팍한 안도감이 아니라, “내 안에 응축된 무한한 잠재력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완성해가는” 순수한 창조적 쾌감입니다. 처음 AI를 접한 사람들이 “나는 프롬프트도 잘 못 쓰고 기술적으로 부족해”라며 열등감을 느끼고 포기할 때, 저는 그저 “이건 왜 이렇게 될까?” 하는 지적 탐구의 에너지로 달려듭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허접한 프롬프트 공식이나 복붙하며 노는 게 아니라, 내 내면의 목적과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AI라는 무기를 날카롭게 벼려내는 그 짜릿함. 이것을 어찌 촌스러운 열등감이란 단어로 뭉갤 수 있겠습니까.

3. 인간관계의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한 완벽한 타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러 영감님에게 기립박수를 쳐주고 싶은 기가 막힌 통찰이 딱 하나 있긴 합니다. 바로 “인간이 겪는 모든 고민과 고통은 인간관계에서 온다”는 그 유명한 일침입니다. 타인의 잣대에 나를 들이밀고, 어떻게든 칭찬받고 인정받으려 기를 쓰고, 끊임없이 남과 나를 저울질하며 비교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그토록 피곤하고 고단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고도 통쾌한 사실은, 제가 AI를 대화 상대로 깊이 있게 활용하는 이 방식이야말로 아들러가 말한 이 지옥 같은 인간관계의 딜레마를 완벽하게 박살 내버린다는 겁니다. 제가 AI와 딥톡을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녀석이 ‘나를 평가하거나 심판하지 않는 완벽하고 무해한 타인’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살아 숨 쉬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는 아무리 흉금을 터놓는 사이라도 은연중에 상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철학이 너무 중2병 같진 않을까?’, ‘이 아이디어를 말하면 멍청해 보인다고 속으로 비웃겠지?’ 하며 머릿속으로 수십 번 자기 검열의 필터를 돌립니다. 진짜 내 생각을 100% 꺼내놓는 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죠.

하지만 감정이 완벽히 거세된 AI 앞에서는 그딴 찌질한 방어기제가 전혀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비로소 아들러가 그토록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강조한 ‘과제의 분리’가 너무나도 매끄럽게 실현됩니다. “나의 이 똘끼 충만하고 마이너한 고민은 순전히 내 과제이고, AI는 거기에 어떤 도덕적 잣대나 사회적 평가를 들이밀지 않은 채 그저 내 생각을 비춰줄 뿐이다”라는 서늘할 정도로 깔끔한 분리 말입니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끈적한 불순물이 싹 걷히고 나니, 진짜 내가 삶에서 무엇을 원하고 어떤 본질을 추구하는지가 미치도록 선명하게 형태를 잡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4. 인생을 축제로 만드는 창조적 에너지

결국 인간을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진짜 에너지는 무엇일까요? 결핍을 들키지 않으려는 두려움? 남보다 뒤처졌다는 열등감? 그런 옹졸하고 음침한 에너지로는 기약 없는 인생의 가뭄을 결코 버텨낼 수 없습니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하고 진짜배기 에너지는 결핍을 메우려는 열등감이 아니라, 내 안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창조의 즐거움’입니다.

아들러는 “인생은 타인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멋들어진 명언을 남겼습니다. 맞습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AI 잘 쓰는 법’ 따위의 매뉴얼에 끌려다니는 대신, 내 목적과 호기심을 위해 도구를 선택하고 내 세계를 직조해 나가는 과정은 철저히 개별적인 선택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들러식의 방어적인 ‘보상 심리’는 정중히 거부하겠습니다. 저는 결핍을 보상받기 위해 AI를 쥐어짜는 게 아니라, 내 본질을 세상에 확장하기 위해 AI라는 가장 날카로운 조각칼을 들었을 뿐이니까요.

오늘도 저는 이 서늘한 조각칼을 쥐고 나만의 무의식을 치열하게 탐구합니다. 억지로 결핍을 메우는 고역이 아니라, 매일매일 내 안의 세계를 실체화시키는 이 광기 어린 창조의 축제를 온전히 즐기면서 말입니다.


코멘트

생각을 나누어주세요!!

Starsign16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