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가 무서운 진짜 이유: 고정된 문명과 SMR의 등장

인간은 참으로 오만하고 순진한 동물입니다. 우리가 매일 당연하다는 듯이 방구석에서 스위치를 켜고 에어컨을 가동하며 누리고 있는 이 찬란한 현대 도시 인프라는, 사실 아주 취약하기 짝이 없는 하나의 거대한 전제 위에 위태롭게 지어져 있습니다. 그 전제란 바로 ‘기후는 과거 인류가 경험했던 그 익숙한 평균치 안에서 얌전하게 유지될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신념입니다. 배운 티를 내는 똑똑한 엔지니어들은 기껏해야 지난 50년, 길어 봐야 100년 남짓한 얄팍한 과거의 기상 데이터를 긁어모아 거대한 송전탑의 강도를 계산하고, 발전소의 냉각수 용량을 결정하며, 국가 전력망의 최대 대역폭을 설정해 왔습니다. 인류가 문명을 꽃피운 홀로세(Holocene)의 기후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우리는 가장 경직된 형태의 인프라를 지구라는 역동적인 행성 위에 고정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전 세계를 무자비하게 강타하고 있는 변덕스러운 이상 기후는, 인간이 두드려온 이 정밀하고 알량한 계산기들을 단숨에 박살 내며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주에서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닥쳐 대정전이 터지는 바람에 세계 최고의 인프라를 자랑하던 도시가 마비되거나, 눈 구경하기 힘들다는 대한민국 부산에 뜬금없이 이례적인 폭설이 쏟아져 전력 설비가 무너져 내리는 꼴을 보십시오. 이것은 더 이상 태평양 건너 남의 나라나 운이 나쁜 특정 지역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후 변화가 진짜로 등골 서늘하게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여름 기온이 몇 도 오르거나 빙하가 녹는다는 감성적인 환경 보호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문명은 특정한 지리적 위치에 아주 무겁게 ‘고정’되어 꼼짝도 할 수 없는데, 그 거대한 문명 덩어리를 멱살 잡고 먹여 살리는 에너지 인프라의 설계 공식 자체가 밑바닥부터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는 데 본질적이고 끔찍한 공포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1. 덩치 큰 인프라의 모순: 길면 밟히고 뚱뚱하면 털린다

현대 자본주의와 산업 사회가 에너지를 굴려가는 꼬라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 멀리 바닷가나 인적 드문 시골 구석에 거대한 중앙 집중형 발전소를 지어놓고, 거기서 펄펄 끓여 만든 전기를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인구 밀집 대도시까지 고압 송전선로를 통해 꾸역꾸역 끌어오는 무식한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아득하게 길고 뚱뚱한 장거리 송전망은 자연이 얌전하게 협조해 주는 정상적인 기후 조건 아래서나 규모의 경제를 통한 훌륭한 효율을 내지, 지금처럼 분노한 자연이 예측 불가능하게 날뛰는 환경 앞에서는 그저 치명적인 취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거대한 샌드백일 뿐입니다.

여름철 태풍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다가 낡은 송전탑 하나만 똑 부러뜨려도 대도시 전체의 불이 꺼지고 문명이 올스톱됩니다. 캘리포니아의 산불 사태에서 보았듯, 건조해진 기후 속에서 강풍에 끊어진 송전선 하나가 거대한 재앙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폭염이 쏟아져서 팽창한 전선이 엿가락처럼 축 늘어지면 송전 효율은 바닥을 치고 기어 다닙니다. 더 환장할 노릇은, 갈수록 깐깐해지는 환경 규제와 지역 주민들의 님비(NIMBY) 현상 같은 피곤한 사회적 갈등 때문에 이제는 산을 깎아 새로운 고압 송전선로를 건설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입니다.

기후 위기 탓에 여름엔 더워 죽겠다고 냉방기를 틀고, 겨울엔 얼어 죽겠다고 난방기를 트느라 전력 수요의 변동성은 미친 듯이 극대화되는데, 정작 그 전기를 배달해 줄 에너지 고속도로는 단 1차선도 더 확장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코미디 같은 모순에 직면해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한 번 지어놓으면 빼도 박도 못하는 고정된 거대 인프라는, 하루가 다르게 휙휙 바뀌는 자연의 역동성을 감당할 최소한의 유연성 따위는 싹 다 거세되어 버린 구시대의 낡은 유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2. 구시대의 룰을 깨부수는 치트키, SMR이 바꾸는 에너지 지정학

덩치만 컸지 환경 변화에는 쥐약인 이 지긋지긋한 장거리 송전 리스크를 완전히 박살 내버리기 위해 혜성처럼 등장한 게임 체인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SMR(소형 모듈 원자로)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단단히 착각하는 게 하나 있는데, SMR의 진짜 무서운 본질은 그저 거대한 원자력 발전소의 크기를 ‘작게’ 구겨 넣어서 귀여운 미니어처로 만들었다는 물리적 크기의 축소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전기를 뿜어내는 생산지 자체를 우리가 펑펑 전기를 소비하는 대도시나 산업 단지 바로 옆으로 멱살 잡고 끌고 와버림으로써, 기후 변화에 허구한 날 털리는 거대한 장거리 송전망 자체를 아예 우회해 버리고 싹둑 잘라버리는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거대한 대전환을 의미합니다. 완벽하게 통제된 공장에서 레고 블록처럼 모듈 형태로 정밀하게 찍어내어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면 되도록 설계된 이 영악한 시스템은, 기존의 현장 건설 방식이 가지는 공기 지연과 비용 초과 리스크마저 지워버렸습니다.

이건 자연이 우리가 거만하게 고정시켜 둔 거대한 쇳덩어리 인프라 자산에 자비롭게 맞춰주기만을 입 벌리고 기다리던 멍청하고 오만한 태도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인류 문명 스스로가 환경 변화에 빠릿빠릿하고 유연하게 적응해 살아남으려는 진일보한 생존 기술이자, 에너지의 지정학적 권력을 중앙에서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혁명인 셈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기후 위기는 단순히 인류의 멸망이나 기술의 비극적인 종말을 뜻하는 얄팍한 디스토피아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들이 철석같이 믿고 엉덩이 무겁게 깔고 앉아있던 그 낡고 고정된 문명의 인프라들을 싹 다 갈아엎고 전면적으로 재조정하라는, 거대한 자연이 우리의 굳어버린 뇌를 향해 날리는 아주 살벌하고 강력한 경고장일 뿐입니다.


코멘트

생각을 나누어주세요!!

Starsign16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